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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y 아미띠에 2026. 6. 4.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Dongguk University)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와 경기도 고양시에 본교를, 경상북도 경주시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분교를 둔 4년제 사립 대학으로, 1906년 불교계 선각자들이 교육구국(敎育救國)의 목표를 갖고 불교인재를 길러내고자 설립한 명진학교(明進學校)에서 시작됐다. 약칭은 동대(東大, DGU)이다.

대한제국 광무 10년인 1906년 불교연구회(佛敎硏究會)가 주체가 돼 명진학교를 세운 뒤로 1946년에 대학기관으로 승격하여 동국대학으로 됐으며, 1953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돼 오늘날의 동국대학교가 됐다.[3]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학술과 인격을 연마하고 민족과 인류사회 및 자연에 이르기까지 지혜와 자비를 충만케 하여 서로 신뢰하고 공경하는 이상 세계의 구현을 건학이념으로 삼고 있다.[4] 상징 동물은 석가모니의 탄생 설화 가운데 어머니 마야부인의 태몽에서 따온 코끼리이고, 상징 꽃은 불교의 진리를 뜻하는 연꽃이다.[5]

동국대학교는 민족과 인류 사회의 이상 실현에 기여할 지도적 인재뿐만 아니라 통섭 교육을 통한 다전공 지식 융합형 인재의 양성에 뜻을 두고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와 성남시 분당구, 경상북도 경주시 등에 양한방 대학부속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경영학 학부 및 대학원은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로부터 경영교육 국제인증을 받았다.[6]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에 있는 동국대학교 만해마을캠퍼스교육원은 매년 만해대상을 수여하는 만해축전을 개최하며, 국내외 문인들의 창작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역사

동국대학교 학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명진관
1906년 ~ 1953년
동국대학교의 역사는 대한제국의 2년제 명진학교(明進學校)부터 시작한다. 대한제국 시기에 황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전국의 사찰을 총괄하기 위해 창건한 원흥사가 1904년 사사관리서의 폐지에 따라 기능을 잃자, 1906년 5월 8일 불교연구회가 주체가 돼 불교 교육만을 맡는 명진학교를 세웠다. 그 뒤 명진학교는 1910년에 3년제 불교사범학교(佛敎師範學校)로 전환했다. 1914년에는 불교고등강숙(佛敎高等講塾), 1915년에는 중앙학림(中央學林)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1919년 9월 30일 3·1 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로 폐교됐으나, 1924년에 전국 사찰에서 601,425원을 기부하여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을 설립했고 1928년에 불교전수학교(佛敎專修學校)의 설립을 허가받아 개교했다. 1930년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中央佛敎專門學校)로 승격됐으며 1940년에는 재단법인의 이름을 재단법인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에서 재단법인 조계학원으로 바꾸고 학교의 이름도 혜화전문학교(惠化專門學校)로 이름을 바꾸었다.[3] 그 뒤 1944년 5월 30일 일본 제국의 전시동원령에 따라서 다시 한 번 강제로 폐교를 당했다.[7] 1945년 10월 27일 다시 혜화전문학교를 열었으며, 1946년 9월 20일에는 동국대학(東國大學)으로 승격됐다.

동국대학교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1946년 9월 20일 혜화전문학교가 동국대학으로 승격될 때 교명으로 제시된 안 중에는 '고려', '동국', '조선'이 들어 있었다.[8] 최종 결정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지만, 광복 전부터 국문과에서 교편을 잡으며 명강의로 인기가 높았던 무애 양주동 교수의 의견이 반영되어 ‘햇빛 밝은 동쪽의 아침 나라’라는 뜻을 담은 ‘동국’으로 교명이 채택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8]

한국 전쟁 기간인 1951년에는 1·4 후퇴로 인해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에서 피란 학교를 열었고, 1953년 9월에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3] 1953년에 4년제 종합대학으로 승격돼 오늘날의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가 됨과 동시에 대학원이 설치됐다.

1954년 ~ 1980년
동국대학교는 과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사학으로, 1970년대 후반까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적이 있다.[9] 1956년 3월에 학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명진관을 착공하였으며, 그 해 12월 30일 공사를 마쳤다. 1965년에는 은석국민학교를 인수하였으며, 이어 1966년에는 흥국중・고등학교를 인수해 1967년에 동국중・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금산중・상업고등학교와 명성여자중・고등학교를 인수하였다. 또한 1967년에는 행정대학원을 새로 만들었다.[3] 1978년에는 경주에 분교를 설립하였고, 1979년 개교해 교세를 확장하였다.

한편 동국대학교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였고, 그 과정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노희두 법학과 3학년 학생이 사망하기도 하였다.[10] 1960년 11월 25일에 4·19 혁명 당시 산화한 학생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동우탑을 설치하였다.[3] 1965년에는 한일기본조약의 체결에 반대하며 6·3 항쟁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1965년 4월 13일에 김중배 농학과 2학년 학생이 경찰의 곤봉에 맞아 두개골 골절로 사망하였다.[11]

1981년 ~ 2000년
1970년대 중반 시작된 학내분규 및 종단분쟁이 1980년대까지 이어졌고, 혁신보다는 전통적인 가치에만 몰두하는 사이에 성장이 더뎌져[9] 교세가 다소 위축되었다. 1991년에는 재정난 타개를 위하여 채권자들을 상대로 학교채를 발행하였으나, 저조한 판매 실적으로 인하여 1995년 발행을 중단하였다.[12]

1982년 문리과 대학을 문과대학과 이과대학으로 개편하여 문이과의 균형잡힌 분과 학문 체제를 구축하였다.[3] 1983년 한의과대학부속 경주한방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88년에 포항기독병원을 인수하여 포항병원을 개원하였고 동국대학교 의료원을 개설하였다. 1989년에는 동국한방병원을 개원하여 의료 및 한방 계열에서 발전을 이룩했으며, 1991년에는 의과대학부속 경주병원을 열었다. 또한 교육부의 BK21 인문사회분야 사업에서 불교학과의 불교문화사상사 교육·연구단이 선정되었고, 핵심분야에서 전자공학과, 화학과, 토목환경공학과, 화학공학과, 연극영화학과 사업팀이 선정되기도 했다.[3]

2001년 ~ 현재
2005년 9월 동국대학교는 광주 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을 지낸 신정아를 문화예술대학원 조교수로 특별채용했는데, 신정아의 예일 대학교 박사 학위가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7월 동국대학교는 예일 대학교에 신정아의 박사 학위 취득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고, 7월 11일 학위가 허위이며 예일 대학교 학생으로 등록한 기록도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13] 이뿐만 아니라 캔자스 대학교 학사 및 석사 학위도 위조된 것이며, 임용 과정에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채용 당시 신정아의 학위에 대한 진위 논란이 있어 동국대학교는 예일 대학교와 캔자스 대학교에 진위를 묻는 공문을 보냈는데 캔자스 대학교로부터는 답변을 받지 못하고 예일 대학교로부터는 박사 학위가 맞다는 답변을 받아 이를 믿고 신정아에게 학사와 석사 시절의 성적증명서를 받지 않아 박사 학위 사본 외에 학위를 입증할 어떠한 문서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13] 임용 당시 예술대학의 교수들이 신정아의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했지만 동국대학교 측은 이를 묵살하고 문화예술대학원에 배치했다가 6개월의 휴직 기간을 거쳐 교양교육원으로 소속을 변경했고, 2007년 2월 15일에 열린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제226차 이사회에서 장윤 이사를 중심으로 신정아의 박사 학위 위조와 논문 표절을 보여주는 각종 진술서와 논문 목록 등의 증거자료가 제출됐지만 이 또한 재단과 동국대학교 측이 무시했으며, 오히려 동국대학교 측이 추가 검증을 시도조차 하지 않다가 5월 29일에 열린 제228차 이사회에서 장윤 이사를 해임했다.[14] 동국대학교는 7월 20일 신정아를 파면하고 검찰에 고소·고발했다.[15] 신정아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예일 대학교 등록금을 내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으며 논문 주제발표 과정을 거쳐 졸업했다고 주장했으나 인터넷 강의를 통한 학업 이수는 불가능하며 당시 예일 대학교에는 논문 주제발표 과정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16]

예일 대학교는 7월에 동국대학교로 보냈다는 신정아의 학위 증명 서류는 모두 거짓이며 동국대학교로부터 학위 검증과 관련된 공문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9월 3일 동국대학교 측의 확인 결과 예일 대학교가 학력 조회 요청 문서를 수령한 것으로 밝혀졌다.[17] 또한 12월 27일에는 동국대학교 측이 기자회견을 열고 예일 대학교가 신정아 채용 당시 예일 대학교에서 보내온 학위 증명 서류가 진본이 맞다고 인정했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18] 예일 대학교는 2008년 2월 1일 리처드 레빈 당시 총장 명의로 동국대학교에 전자 우편으로 공식 사과서한을 보냈다.[19] 동국대학교는 3월 24일 예일 대학교의 불법행위로 동국대학교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며 미국 코네티컷주 지방법원에 5000만 달러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고,[20] 예일 대학교는 3월 28일 실수로 벌어진 일이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21] 예일 대학교는 8월 28일 미국 법원에서 열린 1차 화의조정에서 10만 달러를 들여 일간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동국대학교에 세계적인 교육 협력 제도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며 공식 사과를 제의했으나 9월 18일 동국대학교는 제의를 거부하고 승소를 통해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밝혔다.[22] 예일 대학교는 동국대학교의 소송에 대해 기각신청을 냈지만 코네티컷주 지방법원은 2009년 2월 24일 예일 대학교의 기각신청을 기각했다.[23]

2012년 6월 8일 코네티컷주 지방법원은 1심 재판에서 예일 대학교가 고의로 학위 취득 사실을 잘못 확인해주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동국대학교의 청구를 기각했다.[24] 동국대학교는 7월 5일 소송을 완전히 기각한 1심 판결의 진행과정과 그 결과가 매우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라며 코네티컷주 연방법원에 항소했으나,[25] 2013년 8월 15일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동국대학교 측이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잃고 법학전문대학원 유치에 실패했다고 했지만 예일 대학교가 악의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고, 예일 대학교 행정직원들이 학위 취득 서류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며 동국대학교의 항소를 기각했다.[26][27] 예일 대학교는 판결이 확정된 뒤 동국대학교를 상대로 미국 법원 판결에 따른 소송비용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4년 12월 2일 예일 대학교가 지출했던 소송비용 29만 7천 달러를 예일 대학교 측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28]

2005년 9월 27일에는 일산 동국대병원과 한방병원의 개원식을 가졌다. 2006년에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으며, 서정주 시인이 서거 전 미리 써 모교에 헌정한 '동국백주년 기념축시'를 공개했다. 또한 경영전문대학원 설립 인가를 받아 2007년 경영전문대학원을 개원하였다.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연속으로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교육역량 강화사업 지원 대학에 선정되었다.[29] 2008년에는 동국대학교 동문이자 의정부시 영석고등학교의 재단 학교법인 영석학원 이사장 안채란 여사가 학교법인 영석학원을 동국대학교에 기부했고, 2011년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영석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교세가 다소 위축되었으나, 무관심이나 패배 의식에 젖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아래 2011년 ‘제2 건학’ 운동이 동문을 중심으로 생겨나면서 총동창회, 모교, 재단, 종단이라는 4개의 수레바퀴, 즉 4륜동진(四輪同進)의 길에 나서 옛 명성을 되찾는 데 힘을 모으자는 다짐을 밝혔다.

2010년 2월 27일에는 키자니아 서울 내 '마술학교'와 '연기학교', '극장' 체험관을 개장하였다. 2010년 5월 28일 약 1,500억원의 자금으로 경기대학교의 인수를 노렸지만,[30] 6월 7일 경기대학교 임시이사회가 인수의향서를 부결시켜 인수가 무산됐다.[31] 2012년 7월 25일에는 4년간의 준비과정 끝에 경영학 학부 및 대학원의 모든 과정에 국제경영대학발전협의회로부터 경영교육 국제인증을 받았다.[6] 2016년 4월 8일 대학 특성화의 일환으로 기존에 사회과학대학에 있었던 경찰행정학과가 단과대인 경찰사법대학으로 확대, 개편되면서 경찰행정학과가 경찰행정학부로 개편됐다.[32] 이어 7월 5일에 전국 대학의 경찰학 관련학과 교수들의 모임인 경찰학 교육협의회를 세우고 경찰학과 범죄학 등의 발전을 논의하기로 했다.[33] 2017년 5월 1일에 열린 개교 111주년 기념식에서 기존의 교훈인 섭심, 신실, 자애, 도세(攝心, 信實, 慈愛, 度世)를 대신할 새로운 교훈으로 지혜, 자비, 정진(智慧, 慈悲, 精進)을 선포했다.[34]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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